독일 콘탁스의 영혼을 품은 소련 필름카메라, 키예프(KNEB 2)
오래된 필름카메라를 바라보다 보면 유난히 눈길을 끄는 카메라가 있습니다.
검은 가죽과 은빛 금속이 어우러진 묵직한 몸체, 위로 솟아 있는 다이얼, 그리고 전면에 낯선 키릴문자로 새겨진 ‘КИЕВ’. 처음 보면 독일 카메라 같기도 하고, 일본 카메라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것은 소련에서 만들어진 카메라입니다.
검은 가죽과 은빛 금속이 어우러진 묵직한 몸체, 위로 솟아 있는 다이얼, 그리고 전면에 낯선 키릴문자로 새겨진 ‘КИЕВ’. 처음 보면 독일 카메라 같기도 하고, 일본 카메라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것은 소련에서 만들어진 카메라입니다.
바로 Kiev(키예프)입니다.
그중에서도 Kiev 2는 단순한 소련제 빈티지 카메라라고 부르기에는 꽤 흥미로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독일 자이스 이콘(Zeiss Ikon)의 Contax 설계와 생산 기술을 바탕으로 탄생한 레인지파인더 카메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Kiev를 두고 흔히 ‘소련의 Contax’, 혹은 ‘Contax의 동쪽 후손’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필름을 넣고 손에 쥐어보면, 요즘 카메라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기계와 사람 사이의 묘한 교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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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워 키릴문자로 표기된Kneb는 키예프 초기 버전으로서의 희소성을 가졌습니다. |
1. 콘탁스(Contax)의 혈통을 이어받다
Kiev의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쟁 이후 소련은 독일의 카메라 기술과 생산 설비를 확보했고, 자이스 이콘의 Contax와 관련된 설계 및 제조 기술이 소련으로 이전되었습니다.이 기술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위치한 Arsenal(아르세날) 공장에서 Contax 계열의 레인지파인더 카메라가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Kiev입니다.
그래서 Kiev 2를 처음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카메라의 기본적인 형태는 물론이고,
- 금속 셔터
- 상단 셔터 다이얼
- 거리계와 뷰파인더 구조
- 렌즈 마운트
- 필름 장전 방식
- 초점 조절 방식
Contax II형의 Kiev 카메라로는 Kiev 2, Kiev 2a, Kiev 4a,Kiev 4am 이 있습니다. 겉모습만 비슷한 카메라가 아니라 설계 철학 자체가 이어진 카메라라는 점이 Kiev의 특별한 부분입니다.
2. "초점을 어디서 맞추지?"
Kiev를 처음 만지는 사람이라면 가장 당황스러운 부분입니다. 일반적인 35mm 레인지파인더 카메라를 생각하면 초점 링이 렌즈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Kiev는 조금 다릅니다. 초점 조절 장치가 카메라 본체 안에 들어 있습니다.그래서 렌즈를 바라보면서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상단의 초점 다이얼을 돌려 초점을 맞춥니다. 처음에는 상당히 낯설지만, 몇 번 사용해 보면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오른손으로 카메라를 잡고 검지손가락으로 초점 다이얼을 돌리면 렌즈가 움직이고, 뷰파인더 안의 두 이미지가 하나로 겹쳐집니다.
두 이미지가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 바로 그때가 초점이 맞은 순간입니다. 요즘 디지털 카메라처럼 ‘삐빅’ 소리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스마트폰처럼 화면을 터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 눈과 손으로 직접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래서 Kiev로 사진을 찍으면 사진 한 장을 찍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 됩니다.
Kiev의 또 다른 매력은 긴 거리계 베이스라인입니다.
거리계에서 말하는 베이스라인은 간단하게 말하면 두 개의 시차를 이용해 얼마나 정확하게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요소입니다. Kiev의 거리계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긴 베이스라인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통해 비교적 정확한 초점 조절이 가능했습니다. 특히 50mm 표준렌즈를 사용하면 그 장점이 잘 드러납니다.
뷰파인더 속에서 어긋나 있던 두 이미지가,
살짝 돌리고 → 다시 보고 → 조금 더 돌리고 → 딱!
하고 하나로 겹칩니다. 이 작은 순간이 의외로 상당히 중독적입니다.
필름 한 롤을 찍으면서 사진보다 초점을 맞추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어지는 카메라가 바로 Kiev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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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초점 조절과 금속 셔터막으로 독특한 촬영 감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3. 천이 아니라 금속으로 만든 셔터
Kiev의 또 하나의 독특한 특징은 금속 셔터입니다.당시 많은 35mm 카메라가 천으로 만든 포컬플레인 셔터를 사용했던 것과 달리 Kiev는 Contax 계열의 특징인 수직 주행식 금속 셔터를 사용했습니다. 금속 블라인드가 빠르게 움직이면서 순간적으로 필름에 빛을 허용하는 방식입니다.
최고 셔터속도는 모델과 생산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Kiev 2 계열에서는 최고 1/1250초라는 상당히 빠른 셔터속도를 지원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인상적인 사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금속 셔터가 만들어내는 소리도 재미있습니다.
찰칵!
하고 가볍게 끝나는 현대 카메라와는 다릅니다. 금속 부품들이 움직이고 멈추는 느낌이 손끝으로 전달됩니다. 사진을 찍었다기보다 작은 기계 하나를 작동시켰다는 느낌이 듭니다.
4. upiter와 ZK 렌즈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
Kiev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렌즈입니다.초기 Kiev에는 독일 Contax 계열의 광학 설계를 계승한 렌즈들이 사용되었으며, 이후에는 소련에서 생산된 Jupiter 계열 렌즈가 대표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친숙한 렌즈가 Jupiter-8 50mm F2입니다.
Jupiter-8 계열은 자이스 Sonnar 계열 설계와 연관성을 가진 렌즈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에도 소련제 빈티지 렌즈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습니다. 물론 '소나를 그대로 복제했다'라고 단순하게 표현하기보다는 Sonnar 계열의 광학 설계를 바탕으로 발전한 렌즈라고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이 렌즈로 촬영한 사진은 현대 렌즈처럼 지나치게 완벽하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주변부가 부드러워지고, 역광에서는 플레어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재미있습니다.
사진이 조금 흐릿하고,빛이 살짝 번지고, 색감이 묘하게 따뜻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진을 선명하게 잘 찍는 것이 목적이라면 최신 디지털 카메라가 훨씬 편합니다. 하지만 사진에 시간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진을 선명하게 잘 찍는 것이 목적이라면 최신 디지털 카메라가 훨씬 편합니다. 하지만 사진에 시간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5. КИЕВ'이라는 글자가 주는 특별한 감성
그리고 Kiev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글자입니다.КИЕВ
러시아어 키릴문자로 적힌 Kiev라는 이름입니다. 영문으로 쓰인 카메라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이 낯선 글자 자체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카메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면 Leica, Canon, Nikon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마치 오래된 군용 장비나 냉전시대의 정밀기계를 보는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
특히 초기형 Kiev에는 지금 우리가 흔히 접하는 후기형과 다른 외형과 명판을 가진 제품들이 있어 수집가들의 관심을 받습니다. 다만 ‘КИЕВ 로고가 붙었다 = 독일산 오리지널 부품이 들어간 희귀품’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초기 생산분에는 독일에서 이전된 설비와 기술, 부품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개별 카메라에 어떤 부품이 사용되었는지는 생산 시기와 시리얼, 세부적인 부품 형태 등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따라서 수집용으로 구입한다면 로고 하나만 보고 가격을 판단하기보다는 생산연도와 시리얼 번호, 셔터 상태, 거리계, 렌즈 상태를 함께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Kiev 2는 완벽한 카메라는 아닙니다. 오래된 만큼 개체별 상태 차이가 크고, 사용법도 현대 카메라보다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 불편함마저 재미가 됩니다. 금속 셔터를 장전하고, 상단 다이얼로 초점을 맞추고, 뷰파인더 속 두 이미지를 겹치고, 마지막으로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 짧은 과정 속에는 디지털 카메라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기계적인 손맛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은 바로 볼 수 없습니다.
필름을 현상하고 스캔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어쩌면 Kiev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사진을 찍는 순간보다 사진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었던 시대. Kiev 2는 그 시대의 감성을 지금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카메라입니다.
그리고 카메라 전면에 새겨진 낯선 글자,
КИЕВ
를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조금 더 천천히 걸어보고 싶어집니다.

